유년시절 추녀 밑 볕 자리 멍석에는 갓 거둔 곡식이 널려있고 아재는 멍석 귀퉁이에 앉아 어디서 구해왔는지 그 귀하다는 기타를 들고 뚱땅거리고 있었다. 그 시절 쌀 몇 가마는 팔아야 살 수 있는 귀물임을 감안하면 아재는 숱한 세월을 광에 들락거리며 곡식을 퍼내어 장에 내다 팔았을 터이다. 할머니는 집안에 도적놈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까지 가르쳐 가며 키우고 있었던 셈이다. 꼭 기타 때문은 아니었지만 간혹 아재의 책 보따리는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고 할머니 손에 들린 부지깽이가 춤을 추고는 했다. 그리고 언젠가 집안 어 른들께 들은 말이지만 아버지 역시 나무를 하러 가시면 하루 종일 멋들어지게 굽은 소나무 아래서 하모니카만 불다가 빈 지게만 달랑 등허리에 매달고 오시는 일이 부지기수였단다.
집안내력이던가? 어려서부터 하모니카를 비롯해서 악기 서너 개쯤은 다루었는데 언젠가부터 시들해지더니 요즈음 또다시 딴따라기질이 발돋움을 하고 있다. 해서, 기타를 어렵사리 구 해 똥땅거리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예전에 기타를 만져보았다고는 하지만 여간 힘든 게 아 니다. 우선은 손가락이 굳었고 리듬의 감각이 예전만 못하다. 그렇다고 내가 보컬을 할 것 도 아니고 그저 악보에 나온 대로 코드를 운지해서 화음에 맞춰 흥얼거리면 그만인데 그게 쉽지가 않다는 얘기다. 요즘 전주곡이 재미있는‘소양강처녀’를 연습하고 있는데 6, 5, 4번 줄은 그나마 굵어서 만만 하지만 3, 2, 1번 줄의 손가락 끝을 파고드는 고통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노랫말처럼 차라리 고문이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ㅉㅉ
